-포항 동지고 학생기자 서창호
우리는 매일 무수한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고, 혹은 상황에게 우리 자신이 수동적으로 보여 진다. 이러한 숱하게 많은 상황들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마치 수학에 끝이 없는 미지함수의 경우만큼이나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 상황에 대해 어떠한 기분으로 마주하는가가 중요하다. 기분, 정서, 감정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인간이라는 완벽하지 않는 지성체가 현재까지 살아남고 동기부여를 받으면서 깊은 공허와 두려움, 고독 그리고 고통과 좌절 등의 고난 속에서 현재의 사회를 이루었던가.
나는 그것이 감정과 정서에 관련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이 왜 이러한 글에 시간,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이 글을 순간에도 나 자신에게 던지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에 약간의 후회가 마치 독가스처럼 내 마음에 스며든다. 내가 그렇게 여유가 있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절대 아니다.가까스로 공부의 대열에 내 몸을 맞춘 현재 시점에서 나는 저 멀리 앞서가는, 그들에게는 축적된 지식을 쌓아나가고 있다. 꿈을 꾸고 목표가 있는 나로서는 누구보다도,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죽도록, 건강이란 것이 내게 멀어질 만큼 노력하고 지속해야 한다.
그런데 흐름이 중요한 이 상황 속에서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미울까? 짧은 고민 끝에 나는 당당하게는 아니어도 마치 수십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내 신념을 주장하는 것처럼 수줍게 “아니, 나는 내가 하는 것에 대해 나를 미워하지 않아”라고 답한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것에는 그만한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오늘 내가 말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고 혹은 나처럼 힘든 사람에게 힘이 되어줄 만한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아니 정확히는 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나의 이성이 감정에 굴복하여 자기만족을 위해 쓴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고등학교 3학년이다. 공부가 주가 되고 그 외의 것들을 배제해야만 적어도 나의 목표량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이든, 건강이든 가족과의 관계 등 말이다.
그런데 오늘 이 지배적으로 나의 뇌리를 점령했던 통념이 녹아버리는 경험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한 형이 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적게하고 오로지 한 곳에만 집중할 때에, 내 주관과 감정과 마음이 공부에 종속되어있었을 때, 그 형과의 짧은 만남에서 나는 그 통념이 깨졌다. 그렇다고 해서 형과 1시간 이상을, 긴 시간을 가지고 애기를 나눈 것이 아니다.
많으면 5분도 안되는 이 시간속에서 어떻게 나는 변했는가? 그것은 오랫동안 묵은 때를 정말 한번에 시원하게 제거하는 느낌이었다. 형과의 만남은 여태껏 가졌던 행복의 기준과는 다른, 이상적인 환희였다.
그냥 ‘어떻게 지냈냐, 잘 있었냐“ 등의 안부 인사와 몇 농담은 내가 며칠을 준비하여 만든 발표자료로 상을 타는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여기서 인지해야 점은 ’나도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서 기분을 풀고 싶다‘가 아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에 내가 어떻게 지내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라는 질문이고 그 답을 내렸을 때 우리의 정신은 최소한 근 몇 달안에 ”퇴페“, ”공허“, ”이상과 현실의 괴리“ 등의 아마 좌절한 상태여야 하며 그 힘든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나의 감정을 최적의 형태의 위로로 다가와줄 때 느끼느 감정이다.
그 감정의 회복력을 받고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이전과는 정말로 달라져있을 것이다. 용기를 얻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행복함이 나를 감싸고 있다.
나는 오늘 사람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연관성에 대해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그리고 고3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촉박한 기분으로 써내려 갔다.
어쩌면 오늘 느낀 형과의 감정이 자고 일어나 내일이 되어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하다. 역의 관계로 비유하건데, 우리가 힘든 상황 속에서 불안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우리는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라는 익숙한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는 앞서 내가 언급했듯이 인간이라는 완전하지 못한 지성적 존재가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다른 관점으로 다시 말하자면, 어쩌면 이 글과 전혀 상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영속성에 대해 설명하자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깊은 절망은 깊은 환희에 덮어지며 또한 깊은 환희는 깊은 절망에 가려진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간은 고통과 상실, 좌절과 실패를 통해 성장해 나갔다는 것이다. 니체가 말했듯이 고통없는 성공은 실패이며 가짜이다. 오늘 정말 오랫동안 참아왔던 글쓰기, 표현하자면 “공부”를 할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준 그 형에게 고마움과 반가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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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일 기자 다른기사보기